오늘날 교황 선출은 추기경들이 담당하지만, 원래는 다른 주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로마 교구 성직자와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위가 점차 커짐에 따라 4세기부터 외부 세력이 교황 선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세기 동안 동로마 제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선출된 교황을 승인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속권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교권은 끊임없이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에 의해 교황 선출 권한을 추기경에 국한하는 데 성공했다.[4] 이후 추기경의 권위는 점차 높아졌으며 12세기부터는 로마 교구를 포함한 주교좌 성당에 속한 성직자들도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4세기에는 총대주교보다 상위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중세 후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추기경들은 본래의 종교적인 업무 외에도 문화와 정치,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심지어 어떤 추기경들은 세속 정부의 요직을 겸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헨리 8세 치세의 잉글랜드 왕국에서 총리직을 맡았던 토머스 울지와 프랑스의 재상으로 사실상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를 들 수 있다. 특히 리슐리외는 오늘날까지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뒤를 이은 쥘 마자랭 역시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정치의 명 연기자’라 불리며, 리슐리외의 정치를 계승하여 프랑스의 절대 왕권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3세기 초만 해도 추기경은 불과 7명밖에 없었지만,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규모가 커져서 교황 식스토 5세는 추기경의 수를 주교급 추기경 6명, 사제급 추기경 50명, 부제급 추기경 14명, 합해 70명으로 제한하였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규정은 지켜졌다가, 교황 요한 23세가 이 규정을 폐지하고 인원 수를 보다 크게 늘렸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여든 살 이하의 추기경만이 교황 선거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그 인원수는 120명까지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치세에는 추기경의 수가 규정된 인원 수를 넘어섰던 적도 있었다. 역사상 3번째로 가장 오래 재위하기도 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정력적으로 추기경을 임명했는데, 2003년 10월 21일, 생애 마지막이 되는 추기경 서임 미사를 올림으로써 당시 추기경단의 인원 수는 194명, 그 중 여든 살 이하로 교황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은 135명이 되었다. 2025년 5월 9일 현재 추기경수는 251명이며, 교황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은 13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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